장재형(장다윗) 목사가 전해준 창세기 3장을 비롯한 관련 본문(마태복음 5장, 18장, 에베소서 6장, 갈라디아서 5장, 로마서 8장, 요한계시록 등)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에는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타락과 죄의 본질, 영적 전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원시복음(창3:15)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복에 대해 다룬다.
Ⅰ. 타락의 과정과 책임 전가, 그리고 죄의 통로에 대한 경계장재형 목사는 창세기 3장 본문을 해설하면서, 먼저 사람이 어떻게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세기 3장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동산 안에서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유혹을 받고 범죄하게 되었는지를 다루며, 이것이 인류 역사의 비극적 시작점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특히 뱀(사탄)이라는 존재가 유혹을 시도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뱀이 하와에게 접근해 "정말로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고 왜곡된 질문을 던짐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점에서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을 왜곡하고 부정하며, 인간 내면에 교묘한 질문과 의심을 심어놓아 믿음의 기초를 허무는 전략을 쓴다.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전략이 지금도 계속된다고 지적한다. 현대인들이 죄의 유혹에 빠지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뱀의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줄 하나님이 아신다"라는 거짓말에 흔들린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내면의 욕망과 교만, 곧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근본적인 죄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은 인간은, 그 말씀을 지키는 순종 안에 있을 때 참 자유를 누리지만, 사탄은 거짓으로 그 자유의 경계를 넘어 '네가 직접 선악의 기준을 정하고, 너 자신이 주권자가 되어 보라'고 유혹한다"고 설명한다. 바로 이때 인간은 고유한 자녀다움을 상실하고, 곧장 타락에 이르게 된다.
이 타락의 과정에서 아담과 하와는 저마다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 나타난다. 창세기 3장 12절 이하에 보면,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다"고 말함으로써, 실은 자신의 불순종임에도 불구하고 하와에게 죄를 전가한다.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다"고 또다시 책임을 뱀에게 넘겨버린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죄를 지은 인간의 '전형적 반응'이라고 지적한다. 즉 본인의 죄를 인정하기보다는, '누군가 나를 유혹했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으며, 결국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길만이 유일한 회복의 통로다.
이 점에서 장재형 목사는 마태복음 5장 29~30절을 연결해 언급한다. 예수님께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고 하신 말씀은, 죄의 통로를 철저히 차단하라는 명령이다. 이는 육체의 눈이나 손을 dosliteral로 잘라내라는 뜻이 아니라, 삶 속에서 죄를 끌어들이는 어떠한 요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끊어내고 경계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가르친다. 죄가 눈을 통해 들어오기도 하고, 손으로 범죄하기도 하므로, 우리의 지체(몸 각 부분)를 통해 들어오는 죄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예수님의 엄중한 선언이 현대 기독교인에게도 반드시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문화와 미디어를 통해 들어오는 유혹,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접속되는 온갖 음란물, 물질과 성공을 향한 과욕, 부부 간의 갈등과 무책임 등등, 우리의 눈과 손, 그리고 마음에 틈을 만들 수 있는 모든 통로를 단호히 차단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어서 장재형 목사는 마태복음 18장 6절 말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멧돌을 목에 달아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구절을 추가로 제시한다. 이는 "내가 범죄하는 것뿐 아니라, 혹여 다른 이로 하여금 죄 짓게 만드는 일은 없는가"를 더욱 엄중히 살펴야 함을 말한다. 장재형 목사는 "아담은 하와를 보호해주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곁에 있는 사람을 방치하거나 방임하면, 그가 죄로 미끄러져갈 수도 있다. 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한 가정 안에서도, 부부 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를 점검하고 도와야 할 책임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믿음 생활을 하기도 급급할 때가 많아, 다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세심히 돌보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을 실족하게 만드는 자가 받을 형벌을 극단적으로 말씀하셨다. "그 목에 연자멧돌을 매달아 물에 빠져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로, 죄의 심각성과 그 결과에 대해 경종을 울리신다. 죄에 대해 둔감해지면 안 되고, 교회 안이나 가정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며 영적 전쟁을 함께 치러야 한다고 장재형 목사는 거듭 강조한다.
장재형 목사는 또한, 죄에는 심판이 따른다는 분명한 사실을 성도들이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자이시며,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신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따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인간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여러 번 죄를 짓고, 그것을 가볍게 넘긴다 해도, 결코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면제되지 않는다. 장재형 목사는 세상법정이나 역사법정보다 더 위에 하나님의 법정이 있음을 언급하며, "우리는 늘 하나님의 법정에서 사는 마음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죄의 경중이 상대화되고, '자기가 옳은 대로' 살아가려는 풍조가 심각해질수록,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가 더욱 절실하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타락하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따른다. 먼저, 하나님의 선한 명령과 제한(금령)을 "억압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오해한다. 둘째로, 사탄은 인간에게 "네가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하나님의 경계를 무시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셋째로, 인간은 자기 눈에 보기에 좋고, 먹음직스럽고, 지혜로워질 것 같은 기회를 붙잡으려 하다가, 금령을 어긴다. 넷째로, 죄를 짓고 나면 수치심과 두려움이 뒤따르나, 곧 책임 전가와 변명을 통해 회피하려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창세기 3장에 이미 축약적으로 드러나며,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타락은 과거 한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우리 각자 안에서도 재현될 수 있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을 통해 죄의 통로를 항상 파악하고 차단해야 하며,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되, 타인의 유혹과 실족도 막아줄 수 있는 공동체적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고 도전한다.
장재형 목사는 실천적인 예로서, 매일 성경을 일정 분량 이상 소리 내어 읽는 습관, 기도 중에 "오늘 나를 유혹하는 환경이나 생각은 무엇이었는가"를 점검하고 회개하는 훈련, 부부 간이나 가족 간에 말씀을 함께 나누는 가정예배, 교회 소그룹 안에서 영적 상태를 솔직히 나누고 서로 중보해 주는 모임 등을 제안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이미 넘어졌다면 속히 돌이키도록 이끄는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실제적 실천들이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영적 전투'의 핵심 무기이며,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원리("기록되었으되")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말씀으로 무장하여 사탄의 괴계를 분별하고, 죄의 미끼를 단호히 거절하라는 것이다.
결국, 타락의 과정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겁한 책임 전가는 타락한 인간 존재의 대표적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시되 동시에 구원의 길도 제시하신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이 다음 소주제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룰 내용이지만,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하나님의 심문이 매우 정교하다"고 말한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실 때부터 시작하여, 뱀→여자→남자 순으로 죄의 원인을 찾으시는 과정이 등장한다. 결국 책임의 주체가 누구이며, 죄가 어떻게 파급되는지 드러나게 하신 후에, 각자에게 알맞은 심판을 내리시는 광경이 묘사된다. 그런데 이 심판의 장면 속에도 구속의 암시가 들어 있다. 바로 뱀에게 주어지는 심판의 말씀(창3:15)에서부터, 장차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 예언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락은 인간에게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고, 피조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극복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경륜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만약 죄를 가벼이 여기면, 구원의 필요성 또한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의 실존이 죄로 인해 얼마나 깊이 훼손되었는지 알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얼마나 위대한 은혜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는 곧 다음 소주제에서 다룰 죄의 심판과 하나님의 법정, 그리고 이어지는 원시복음의 메시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Ⅱ. 죄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법정, 그리고 인간 존재의 비참함장재형 목사는 창세기 3장 14절 이하를 '죄에 대한 판결문'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의 순서에 따라 먼저 뱀에게, 이어서 여자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에게 차례로 심판을 선포하신다. 뱀에게는 "네가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지니라"(창3:14)고 하신다. 이것은 뱀이 단순히 기어 다니는 동물이 되었다는 자연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사탄이 가장 비참한 존재로 전락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씀이다. 장재형 목사는 "뱀은 욕망과 거짓, 사악함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언급한다. 특히 혀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뱀의 이미지는, 거짓말과 분열을 조장하는 사탄의 특성을 고발한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뱀이 기분 나쁘겠다'고 농담처럼 말하면서도, 사실은 사탄이 뱀보다도 훨씬 더 타락하고 비참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탄은 원래 천사였지만 하나님께 반역함으로써 타락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서 영원히 분리된 자가 되었다. 지금도 사탄은 세상 권세를 거머쥐고 온갖 유혹과 죄악을 퍼뜨리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미 '심판받은 존재'이며, 최종적으로 불못에 던져질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장재형 목사는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성도들이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미 패배가 정해진 적"으로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이 땅에서 사탄의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기에, 성도들은 영적 전투를 계속 치러야 한다. 사탄은 발꿈치를 무는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창3:15). 장재형 목사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사탄의 권세가 결정적 패배를 맞이했지만, 종말이 완성되는 순간까지는 끊임없는 영적 공격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때때로 절뚝거리고 낙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탄의 기만과 유혹, 상처 주기 등을 통해 성도가 발꿈치를 물리듯 아픔을 겪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이는 아담이 타락한 뒤 모든 인류가 죄성 아래에 놓인 상태와도 연관된다.
장재형 목사는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을 인용하며, 이 싸움이 영적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육체적 힘이나 세상적 방법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 없으며, 오직 성령과 말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세상에 있는 사탄의 영보다 크시다"라는 요한일서 4장 4절 말씀처럼, 하나님 편에 선 자가 이미 승리를 보장받았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도가 이를 실제로 믿고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기습을 당하고 흔들리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반드시 매일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만 사탄의 발꿈치 무는 전략에 빠지지 않는다"고 재차 역설한다.
여자에게 주어진 형벌은 임신의 고통이 크게 더해지고, 자녀 출산의 수고가 커진다는 내용이다(창3:16). 장재형 목사는 본문의 역사적·문명사적 맥락을 주목한다. 원래 자녀 출산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생명의 기쁨이지만, 타락 이후로 그것이 고통으로 인식되고, 심지어 오늘날에는 출산율이 급감하는 등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이 부담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죄로 인해 사랑과 기쁨 대신 이기심과 고통을 더 크게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한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3:16)는 구절은, 여자가 남자에게 지배받는 불평등 구조가 형성됨을 뜻한다. 장재형 목사는 "죄의 세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 역사적으로 많은 수탈과 억압을 받아 왔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는 오히려 남편이 아내를 섬기고,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며, 서로 사랑으로 합일을 이루는 모습이 회복되어야 함을 교훈으로 제시한다.
다음으로 아담에게 주어진 형벌은 그가 평생 수고하여야 먹을 것을 먹고,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는 선언이다(창3:17~19). 여기서 장재형 목사는 "인간이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 손으로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비극에 처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라는 표현에서, 인간의 죄가 자연 세계에도 파급되어, 피조물 전체가 탄식하는 상황(롬8:22)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8장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는다"고 말했듯이, 타락 이후의 세상은 온전한 조화 대신 투쟁과 노동, 갈등과 재난이 만연하게 되었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아담이 복의 통로가 되지 못하고 저주의 통로가 되었다"고 정리한다.그러나 이 심판 장면에는 하나님의 구속 의지도 함께 드러난다. 창세기 3장 2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고 하신 대목이다. 이는 곧 피 흘림(희생 제사)이 없이는 죄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는 "가죽옷을 만들려면 동물이 피를 흘려 죽어야 하듯이, 죄를 덮기 위해선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다.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이 구약의 그림자적 예식을 완성하게 된다"고 해설한다. 이 장면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예시하는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3장의 심판 선언은 단지 '벌 줌'으로만 끝나지 않고, 동시에 구원의 약속을 포함한다. 죄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되지만, 그 죄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인간이 회복될 수 있는 소망이 제시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창3:22)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죄 지은 상태로 생명나무 열매까지 먹어 영생에 이르는 길을 차단하신다(창3:24). 이는 죄인인 상태로 영생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며, 만약 죄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천국마저도 지옥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죄인이 천국에 들어가면 부끄러움과 고통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며, 실락원(失樂園)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 의도가 아니라, 죄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임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계시록 22장 14절-"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생명나무에 나아가며"-에서 보여주듯,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옷 입고 죄 사함을 받은 자들에게만 다시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있는 은혜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성경의 결말은 단순히 인간 추방으로 끝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회복으로 마무리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어떠한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이어지는 구약 전반에 걸쳐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을 갈망하게 되는 서사적 토대를 마련한다. 장재형 목사는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태어나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면치 못하지만, 동시에 은혜와 구원의 희망이 성경 전체를 통틀어 흐른다"고 설파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심판과 은혜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들고 살도록 부름받았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장재형 목사는 현대 교회의 과제를 언급한다. 교회가 "복 받으세요, 형통하세요"라는 말만 외치다가 죄의 문제를 소홀히 해버리면,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경고한다.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지 않으면, 회개와 구원의 긴박성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복음을 진정 가치 있게 붙들려면, 먼저 죄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는지, 피 흘림이 왜 없으면 안 되는지를 이해해야, 그리스도의 속죄가 얼마나 큰 사랑이고 희생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을 가볍게 지나치지 말고, 우리의 실존과 깊이 연결하여 묵상해야 한다는 것이 장재형 목사의 당부다.
Ⅲ. 원시복음의 약속과 구원의 회복, 그리고 삶의 실제적 적용장재형 목사는 창세기 3장 15절을 '원시복음(Proto-Evangelium)'이라고 부른다. 이는 인류에게 주어지는 구원 예언의 첫 번째 선언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장차 올 메시아(그리스도)의 사역을 암시한다. 즉, 뱀(사탄)과의 대결이 있겠지만, 결국 여자의 후손(그리스도)이 뱀의 머리를 치고 궁극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동시에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표현처럼, 사탄이 그리스도에게 아픔을 주긴 하겠으나(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최종적으로는 사탄이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패배한다는 큰 그림을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원시복음이 신약 전체로 이어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고 가르친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했듯,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죄 없이 탄생하셨고,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심으로써 죄 문제를 해결하셨으며, 부활을 통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다. 이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또한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사탄이 결박당해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갇히고, 최후에는 불못에 던져 영원히 고통 받게 된다고 말하는 대목도, 이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이 최종적으로 완결되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땅의 역사는 단지 인간의 정치나 문화 발전사로만 볼 수 없으며, 창조 이래로 진행되어 온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사탄의 대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 대결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에게도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이 원시복음은 "하나님이 죄인을 돌보시는 첫 언약"임을 시사한다. 장재형 목사는 "창세기 3장 15절은 하나님의 심판 말씀 속에서도 드러난 구원의 은혜의 시초이며, 이후 아브라함 언약(창12장), 출애굽 언약(출19~24장), 다윗 언약(삼하7장), 예레미야의 새 언약(렘31장),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새 언약에 이르는 긴 구원의 언약 시리즈를 상징적으로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모든 구약의 제사와 율법은, 장래에 오실 메시아의 구속 사역을 미리 가르쳐 주는 예표였다는 것이다.따라서 현대를 사는 성도들은 창세기 3장 15절을 교리적 지식으로만 여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재 우리 삶 가운데 적용해야 한다. 첫째, 영적 전쟁의 실재를 인정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 현장에서, 많은 성도들이 사탄의 존재나 영적 공격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 별다른 대비책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원시복음은 '뱀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적대'를 언급함으로써, 이 세상에 계속될 영적 갈등과 치열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성령을 따라 행하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이 말하듯, 우리 안에서도 내적 영적 전투가 일어난다. 개인 차원의 내적 갈등부터, 교회 공동체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외적 갈등까지, 모든 차원에서 사탄은 성도를 무너뜨리고자 계속해서 작동한다.
둘째, 성령과 말씀, 그리고 예수의 보혈이야말로 사탄을 대적할 유일한 무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인간의 결심이나 도덕적 노력만으로는 죄와 마귀를 이기기 어렵다"고 말한다. 예수님도 광야 시험에서 "기록되었으되"라 선포하시며 말씀으로 사탄을 몰아냈고, 성령 충만을 힘입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다. 교회가 성찬과 세례 등 예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적으로 기념하고 선포하는 이유도, 그분의 대속이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는 영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개념을 자주 강조한다. 구약의 유월절 양의 피가 재앙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었듯, 예수님의 십자가 피는 죄와 사망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낸다. 이는 단지 상징이 아니라 영적 실제로, 성도들이 매일의 기도와 예배를 통해 그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셋째, 복음 안에서 공동체적 책임과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원시복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단지 개인 구원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공동체, 곧 교회가 이 사탄과 싸우는 최전선이 됨을 암시한다. 장재형 목사는 "아담이 하와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듯, 오늘날에도 많은 남편이 아내를 영적으로 방치하거나, 부모가 자녀의 영적 상태를 세심히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시복음의 흐름에 따르면, 결국 우리의 부름은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 주며,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사탄은 '분열'과 '고립'을 유도하지만, 복음은 '연합'과 '섬김'을 촉진한다. 교회 안에서 서로 기도해 주고, 말씀으로 교정해 주고, 회개와 회복의 과정을 함께 걸어갈 때, 뱀의 공격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나아가 장재형 목사는 원시복음이 창세기 3장 15절에서 시작되어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스토리 아크(arc)를 형성함을 상기시킨다. 계시록 21~22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 '생명수 강가의 생명나무' 등으로 대표되는 완전한 회복이 선포된다. "그곳에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밤이 없고, 해와 달의 빛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빛이 되어주시는 영광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죄인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어, 마침내 생명나무 실과를 함께 먹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회복의 결말'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작점, 혹은 씨앗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이라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새기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교리는 결국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몇 가지 구체적 제안을 한다. 첫째, 매일 성경을 '통독'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큰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을 습관화하라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만 발췌독을 하면, 우리는 때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타락-죄-심판-회복-새 창조'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면, 개인적 삶의 문제가 더 큰 맥락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둘째, 기도 중에 회개를 구체적으로 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확신하라는 조언이다.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신다"(요일1:9). 그러나 회개가 없으면 은혜의 문도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날마다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넘어졌다면 속히 일어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 받아야 한다.
셋째,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소그룹 모임이나 제자훈련, 또는 양육 관계를 통해, 영적 친밀감을 쌓고 서로 돌보는 환경을 만들라는 것이다. 원시복음이 말하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씨의 싸움'은 공동체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므로,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쉽게 공격당하기 쉽다. 장재형 목사는 "성도들이 연약할 때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 기도해 주는 것이 건강한 교회의 표지"라고 언급한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으나, 서로 죄와 유혹을 고백하고 회개를 권면하는 과정이 쌓이면, 사탄의 발붙일 틈이 줄어든다는 것이다.그리고 넷째,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교훈도 잊지 않는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소금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원시복음에 입각한 복음의 메시지는 개인 구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부패나 어둠을 방치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하며, 치유와 화해를 이루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를 위해 각자 직장과 가정, 그리고 이웃 관계 속에서 정직, 절제, 온유, 섬김의 태도를 실천할 것을 권면한다. "성도 한 사람이 올바른 빛을 비추기만 해도, 뱀의 음모는 쉽게 드러나고, 하나님 나라의 공의가 확장된다"는 논리다.
창세기 3장에 기록된 타락 이야기와 그에 대한 심판,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원시복음(창3:15)은 성경 전체를 꿰뚫는 대주제라고 할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올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구원의 복음을 전인격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인간이 스스로 선악의 기준을 제정하고자 했을 때, 즉 하나님 대신 자기가 주권자가 되려 했을 때, 비극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고, 언약과 계시의 역사,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활짝 여셨다. 그럼에도 사탄은 계속해서 발꿈치를 무는 식으로 성도들을 괴롭히며, 우리가 진리에서 이탈하도록 시도한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과 성령의 능력, 그리고 예수의 보혈을 끊임없이 붙들어야 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창세기 3장 본문을 해설하면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요점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라는 말씀처럼, 타락한 인간은 육체적 생명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둘째 사망이 해치 못하는 부활의 생명"을 보장받는다. 원시복음의 약속, 구속사의 완결을 바라보며,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이 아닌, '하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부르심을 받은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도전한다. 선악과 사건에서 시작된 비극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역전되고, 종국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망을 품고 죄와 유혹을 물리치며, 서로를 보호하고 세워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길임을, 장재형 목사는 힘주어 말한다.
이상 창세기 3장을 중심으로 한 죄와 타락, 심판과 은혜, 그리고 원시복음의 구속사적 의미에 대한 장재형 목사의 핵심 가르침을 담고 있다.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음에도(롬5:12), 그 속에서 "여자의 후손"이라는 구원의 약속이 주어졌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나무 실과를 함께 먹는 영원한 회복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언제든지 뱀이 노리는 발꿈치 물림을 의식해야 하지만,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할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점을 기억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를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증언하는 교회와 성도로 거듭나길 간절히 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