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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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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
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
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
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姿勢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
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
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黃東奎 詩選 <三南에 내리는 눈>, 1975. 1. 1 발행, 민음사 간, 500원) 중에서
“황동규의 초기 시는 인간의 절대를 향한 비극적인 자세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것은 지극한 내면적 고뇌이며 따라서 그의 치열한 개인적 정서이고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그 비극과 대결하려는 지적 의지를 이룬다. …
황동규의 고뇌는 다중의 중첩에 있다. 그는 사랑을 사랑하면서 사랑의 종말을 사랑하고 그 사랑들의 무모함을 다시 사랑한다. 그는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기다림들에 대한 처절한 열망을 몸으로 깨닫고 있다.”
황동규 시인의 친구였던 김병익(문학평론가)의 해설 ‘사랑과 변증의 지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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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선 <삼남에 내리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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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선생은 평생 잡글(칼럼이나 수필 등)을 쓰지 않은 작가로도 유명하다. 아들 황동규 시인은 서울대 인문대를 차석으로 입학(필자의 오랜 기억이니 틀렸을 수도 있음)한 수재였다.
시인 폴 발레리는 작품은 작가를 떠나면 그때부터는 독자의 몫이라 했다. 상상의 나래는 독자의 몫이라는 뜻이었을까? 참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1970년대 연인들의 시편 두 편이 있었다. 한 편은 김춘수의 <꽃>이요 또 한 편은 바로 이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였다. <꽃>보다 <즐거운 편지>는 좀 더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들이 즐겨 음미하던 시편이었다.
발레리의 말처럼 김춘수, 황동규 두 시인의 시적 의도와 달리 이 두 편의 시는 연인들이 여전히 즐겨하는 시편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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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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